눈 오는 겨울날의 필청음반: 차이코프스키 전기 교향곡집 外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1977~1979(DG)
- 눈이 소복소복 오는구나. 그럼 이걸 들어야겠네.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은 대개 4, 5, 6번의 후기를 더 높이 평가하고 또 더 즐겨 듣는다. 그러나 1, 2, 3번의 전기 교향곡들도 후기 교향곡들의 광휘에 가려져서 그렇지 결코 나쁜 작품들은 아니다. 같은 "겨울"의 이미지라고 해도, 후기 교향곡들이 지니는 그것이 삭풍과 눈보라의 혹독함 그리고 비장함이라면, 전기 교향곡들은 포근하게 내려 쌓인 함박눈 쪽이다. 특히 따스한 실내에서 눈이 내리는 바깥의 풍경을 보고 즐길 때의 배경음악 역할로는 전기 쪽이 단연 우위라고 생각한다.

- 연주 자체는 70년대의 카라얀이 그렇듯이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차이코프스키라고 하면 늘 등장하는 "러시아적" 운운하는 얘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기 교향곡들이 긍정적인 겨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카라얀의 음반에서 흔히 느껴지는 진부한 낭만성은 여기에선 오히려 실보다 득이 크다. 눈 내리는 겨울날의 풍경이 사람에게 안겨주는 낭만적인 감상이 연주 속에 오롯이 느껴지게 만드니까.

- 그래도 차이코프스키를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가볍게만 보면 안된다고 믿는 분들에게 일말의 위안거리가 되는 것이 함께 수록된 두 개의 관현악 소품들이다. "슬라브 행진곡"과 "이탈리아 기상곡"의 1966년도 연주가 이 음반에 들어있는데, 음색도 그렇고 박자와 강세의 측면에서 카라얀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의 기준에서는 의외로 느껴질만큼 박력이 넘친다. 이전에도 몇번 생각해봤지만, 역시 카라얀의 진짜 진가는 교향곡들보다도 이런 교향곡 이외의 관현악곡들에서 더 잘 나타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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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어덜트 | 2009/12/26 23:1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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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brik at 2009/12/27 22:47
'포근하게 내려 쌓인 함박눈'이라는 문구를 보고서, 얼른 이 음반을 꺼내서 듣고 있습니다. :)
오늘같이 모처럼 눈이 내린 날에는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듣는 것도 계절을 즐기는 큰 즐거움인 듯합니다.
Commented by 영어덜트 at 2009/12/31 22:47
확실히 그렇습니다. 참고로 저는 봄이라면 역시 비발디의 사계를 들어야 하고, 여름에는 바흐의 관악 협주곡들을, 가을에는 단연 브람스, 겨울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을 들어야 한다는 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악 생활에 있어서 지나친 관념에의 집착은 나쁜 것이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한우 at 2010/01/16 21:04
저도 1,2,3번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듣는 빈도는 확실히 후기 교향곡보다는 적다는;;;

언급하신 음반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2년전쯤에 나온 염가 박스를 통해서) 연주는 글쎄요.. 듣는 빈도가 적어서 좋다, 나쁘다를 말하지 못하겠네요
Commented by 영어덜트 at 2010/01/23 12:18
다음에 눈 오는 날 집에 계시게 되면 한번 들어보십시오. 창밖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들으실 것을 특별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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