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우는 마음 그 누가 알랴: 말러, "대지의 노래" -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킹,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빈 필하모닉, 1966(Decca)
- 발터와 캐슬린 페리어의 녹음 이래, "대지의 노래"는 왠만하면 남-녀 혼성 성악가를 기용하는게 대세였다. 분명 악보에는 남-녀 외에 남-남 성악가 기용도 가능하다고 명시해놓았지만, 정작 작곡가 본인이 한번 남-남으로 기용해봤다가 '영 아니올시다'라고 판단내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일화와, 항상 남-녀 혼성 기용을 고집하던 '권위자' 발터의 영향 탓인지, 남-남 성악가를 기용한 "대지의 노래"는 그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안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다. 번스타인의 이 음반은 그 중에서 그래도 가장 인정받는 사례.

- 번스타인과 빈 필의 조합은 믿을만 하다. 1966년에 녹음된 이 음반에서도 번스타인 특유의 낭만성과 빈 필의 전통적인 사운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좋은 성과물을 내고 있다. 1939년 발터와의 말러 9번, 1958년 발터-페리어와의 "대지의 노래", 그리고 이 1966년 번스타인과의 "대지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빈 필은 '애수어린 말러'의 음색을 조탁해낸다. 여기에 말러의 감성적인 부분을 극도로 자극하는 번스타인의 해석과의 조합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제임스 킹과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두 성악가들도 제 몫을 하고 있다. 킹의 호방한 음색은 1, 3, 5 악장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킹 보다도 피셔-디스카우에게 귀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기교의 극을 보여주는 4악장과 비애감으로 가득찬 2, 6악장은 정말 대단하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옛 노래 구절 하나, "사나이 우는 마음 그 누가 알랴". 참 묘하게도 이 음반만 생각하면 자꾸 그 구절이 떠오르는데, 의외로 두 곡 사이에 비슷한 감성이 공유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1966년도의 데카 음반이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스튜디오 스탭들은 존 컬쇼와 그 동료들이다. 컬쇼의 프로듀싱 스타일은 한 마디로 '드라마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연주가 지니는 이미지나 내러티브를 가장 효과적으로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고민했던 컬쇼의 프로듀싱 철학은 여러 명반들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이 "대지의 노래"도 컬쇼의 명 프로듀싱이 빛나는 사례. 감정의 고조와 녹음의 음량이 상호 조응하는 6악장 마지막 구절에서는 '과연 컬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아직도 이 음반은 오리지널스로 재출반이 안 되고 있는데, 솔직히 '영원히 재출반 안 해주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 오리지널스로 재출반되면 왠지 모르게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원래의 '데카-컬쇼 사운드'가 변질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과연 이 음반에서 들을 수 있었던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는 "사나이 우는 마음 그 누가 알랴"의 감성이 남아 있을 것인지도 심히 의심스럽고.
이글루스 가든 - 클래식 음악 듣기
by 영어덜트 | 2009/11/07 13:37 | 클래식 음반 리뷰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youngadult.egloos.com/tb/184156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漁夫 at 2009/11/07 14:48
피셔-디스카우는 1960년 부근에 머레이 디키와 파울 클레츠키 지휘로 HMV에서 이 곡 녹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 오랜 기간 말루크너를 피했기 때문에 못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영어덜트 at 2009/11/09 00:10
언급하신 음반이 최근 EMI 제미니 시리즈로 다시 나왔더군요. 들어보고픈 마음은 있지만 아무래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과 돈 문제 때문에..ㅠㅠ
Commented by 한우 at 2009/11/08 17:57
전 말러의 곡중에 귀에 들어오는게 방황하는 젊은이 노래밖에 없어서,, 1번하고 9번은 요새 조금씩 듣고 있고..

근데 데카 레전드하고 데카 오리지널하고 리마스터링 방식이 같지 않았나요??
Commented by 漁夫 at 2009/11/08 18:11
같은 24bit 맞을텐데요....
Commented by 영어덜트 at 2009/11/09 00:15
예전에 고클래식 질문/답변 게시판에서 "리마스터링"에 대해 한 회원분이 쓰신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7753번 게시물 답글들 중)

그에 따르면 리마스터링이란 믹싱과 협의의 마스터링이 합쳐진 개념이라고 하는 군요.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데카 레전드와 데카 오리지널스가 같은 24bit 리마스터링 방식을 쓴다고 해도, 이 '믹싱' 과정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적어도 데카 레전드에 OIPB라고 쓰여져 있는 건 본 일이 없어서......

뭐 같은 유니버셜 계열 시리즈로 하는 거니까 제 생각과는 달리 리마스터링 방식이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 역시 회사 쪽에 물어봐야 확실해지겠죠.

사실 데카 레전드로 나온 음반들이 오리지널스 시리즈에 편입 재발매 되는 걸 꺼려하는 것은 심리적인 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는데요....... 이에 관해선 차후에 한번 포스팅을 해볼게요.
Commented by 한우 at 2009/11/09 00:34
심리적 요인이라.. 조금 궁금해지는 군요

전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에 쓰는 OIBP형식을 꽤 좋아합니다. emi의 아트는 영 이상하고 (소리가 선명하지 않다고 해야 할지..) 그 외에 회사는 아직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그리고 표지도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죠..(뭔가 멋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러다보니 가끔 emi도 이 오리지널 발매 형식으로 갈아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