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한 연주만 골라야 한다면 -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집: 린지 사중주단, 1984(ASV Resonance)
- 린지 사중주단은 두 번에 걸쳐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을 녹음하였다. 이 음반은 그 중 구반에 해당되는데, 원 레이블 산하의 염가 박스물 전담 레이블에서 염가반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덕분에 칙칙하고 촌스런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연주는 2000년 무렵에 새로이 녹음된 신반과 비교해봐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 린지 사중주단은 특히 출신지인 영국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사중주단으로 높이 평가를 받아 왔다. 물론 그것이 영국인 특유의 자국중심주의에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려우나, 분명히 그들은 세계 제일의 수준을 자랑하는 사중주단임에는 틀림없다. 이 음반에 담긴 탁월한 생생함을 지닌 음질의 연주에서 그들이 현을 놀리는 솜씨를 들어보면 누구라도 그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과 비교해봤을 때, 린지 사중주단은 확연히 대비되는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전자가 현대적이고 직선적이며 선명함에 핵심을 둔 소리를 지향한다면, 후자는 좀 더 낭만적이고 완곡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쪽이다.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 특히 후기 작품들에서 낭만성과 작곡가의 내면으로의 탐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린지 사중주단의 연주에서 그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 안타깝게도 린지 사중주단은 현재 해산한 상태이고, ASV 레이블 역시 더 이상 음반을 찍어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전집이 나오지 않아 값비싼 개별 음반들을 한장 한장 사 모아야 하는 신반은 물론, 염가의 박스반인 이 구반도 이제는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희귀품이 되었다. 원 녹음들은 분명 어딘가에 누군가의 수중 하에 있겠지만, 당분간은 재출반이 이루어질 가망은 없어보인다. 한마디로 눈에 띄면 바로 사들이라는 얘기다.

-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집은 무수히 많다. 또한 그 대부분이 놓치기 아까운 명연주들로서 고유의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 등으로 인해 굳이 단 하나의 연주만을 택해야 한다면, 가격대 성능비의 측면에서나 예술적 성취의 수준에서나 만족스러운 이 음반이 아마도 최우선적인 선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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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어덜트 | 2009/04/21 22:35 | 클래식 음반 리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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