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현실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예수의 탄생을 통해 구현되는 전 인류의 사랑과 평화라는 크리스마스의 참뜻을 되새겨보고자 하는 이에게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권하고 싶다. 예수의 탄생에 얽힌 일화들을 오라토리오의 형태를 빌어 음악적으로 표현해낸 이 작품은 순수한 음악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경건함, 그리고 크리스마스에서 빠질 수 없는 축제적인 분위기가 거장 바흐의 손길을 거쳐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걸작이다. 3시간에 걸친 긴 연주 시간이 일면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미리 한역 가사를 준비해놓고 그 내용을 조금씩 음악과 함께 되뇌어보면서 들으면 결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음악 자체가 워낙 분위기가 좋아서 거기에만 집중해도 3시간 쯤은 금방 가 버린다. 이 작품에 있어서는 정격 연주 스타일로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둔 가디너나 아르농쿠르 등 좋은 음반들이 많지만 여기서는 예전부터 전통적인 명반으로 추앙을 받아온 칼 리히터와 뭔헨 바흐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의 음반을 소개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흐의 음악에 헌신한 지휘자인 리히터는, 전통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가운데 현대적인 재해석도 서슴치않는 과단성을 보이는 연주를 들려준다. 종교의 경건성과 음악의 세련됨이 그의 연주에서는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 그의 지휘에 맞추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해내는 음악은, 분명 지금 대세를 이루고 있는 정격 혹은 절충식 연주와는 또 다른 의미로 깊은 경지를 담고 있는 고양감을 감상자에게 오롯이 전달하며 이는 작품 자체의 의미와도 잘 부합하는 성질의 것이다. 한편 뛰어난 독창자들 또한 이 음반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군돌라 야노비츠, 프리츠 분덜리히, 크리스타 루드비히, 프란츠 크라스로 이어지는 독창자들의 면면은, 그 이름들만으로도 이미 연주의 수준을 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 그리고 실제 연주에서도 이름값에 걸맞는 호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야노비츠와 루드비히, 두 여성 가수의 독창은 물론이고 비운의 테너 분덜리히와 중견 베이스 크라스의 목소리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네들 고유의 전통적 신앙심의 자연스러운 발호와 그에 못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본분을 다해 음악에 충실하고자 하는 성실성이다. 그들의 독창은 가히 이 음반에 있어서 왕관을 장식하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다. 다시 한번 되묻노니 어째서 크리스마스가 소비와 향락의 날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인지? 왜 타인들의 사생활에 그렇게 참견이냐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으나, 똑같이 종교적인 근원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석가 탄신일과 비교해보면 분명 지금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방법은 무언가 잘못되어있음이 분명하다. 최소한 석가 탄신일을 연인과 모텔에 가서 밤을 지새는 대의명분으로 삼지는 않잖는가. 오물로 더럽혀진 크리스마스를 차가운 냉수로 씻어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리히터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연주를 들으면서 원래의 진정한 의미를 충실하게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이글루스 가든 - 클래식 음악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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