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공식 전집의 괄시 현상"이 단순히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로 인해 발생한 음질 상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이, 동시대 지휘자들인 브루노 발터나 토스카니니, 조금 뒷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칼 뵘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경우에는 각각 무한한 애정을 표출하는 분들이 상당히 계신다는 점입니다. 특히 DG 본사로부터 버림받은 뵘 선생님의 베토벤 전집을, 음질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이탈리아 DG 로컬 반으로나마 소지하고 있는 뵘 애호가 분들의 애정에는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EMI의 푸르트벵글러 베토벤 교향곡 전집 만은, 그처럼 "미칠듯이" 사랑해주는 분을 아직까지는 뵌 적이 없습니다. 전시 녹음들이나 미공개 실황 음원들, 그리고 이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몇몇 녹음들의 개별 음반에 대해서는 엄청난 애정과 집착을 보이시는 푸르트벵글러 애호가분들의 이런 경향은 매우 의아롭다고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는 EMI의 전집이 말 그대로 "옥석혼효"라는 점을 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베토벤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의 음원들은 푸르트벵글러가 1948년부터 1954년 사이에 빈 필하모닉, 스톡홀름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 도합 세 연주단체를 이끌고 때로는 스튜디오에서 또 어떤 때는 실황으로 녹음한 것입니다. 이처럼 음색과 성격이 판이한 각각의 연주단체들과 함께, 각양각색의 녹음 조건 및 환경에서 연주한 기록들이다보니 음질과 연주 수준의 양 측면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달성치 못하고 들쭉날쭉 천차만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현존하는 푸르트벵글러 유일의 베토벤 2번 교향곡 연주 녹음인 1948년 빈 필과의 런던 알버트 홀 실황의 음질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습니다. 잡음과 히스로 자글거리는 음질 사이로 언뜻 비춰지는 연주 그 자체의 유려함이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또 4번, 5번, 7번의 경우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덕분에 음질은 매우 양호한 편이지만, 정작 연주 자체는 베를린 필과의 전시 녹음들에 이미 매료되어버린 애호가들에게는 왠지 아쉬워보이는 데가 있습니다. 8번은 음질도 2번 다음으로 안 좋거니와, 연주 단체가 스톡홀름 필하모닉인 탓에 "푸르트벵글러 하면 베를린 필 아니면 빈 필"이라는 세간의 인식에 비추어볼 때 역시 서운한 감을 줍니다. 반면 1번, 3번, 6번, 9번의 연주는 과연 푸르트벵글러라는 찬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세계에 대한 푸르트벵글러의 깊이있는 탐구의 대상이 그저 유명하고 인기있는 일부 작품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1번 연주는 이 전집에 역사적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또 44년 "우라니아 반"의 광포함과 음울함을 광대한 거시적 안목으로 대체하여 완숙미를 보여준 3번, 진짜 '전원에서의 여유와 평화감'을 만끽할 수 있는 6번, 그리고 그 동안 너무나 많이 언급이 되어 저같은 햇병아리 감상자가 왈가왈부하기가 두려울 정도인 역사적인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의 9번 실황 등은 푸르트벵글러의 예술 세계가 지닌 무게감과 위력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호연들입니다. 총평하자면 고르지 못한 개별 녹음들의 음질 및 연주 수준에도 불구하고,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이라는 어느 거대한 세계에 입문코자 한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음반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여러 지휘자들의 각양 각색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반을 두루 섭렵하고자 하는 분들도 이 음반을 접하지 않고 넘어가기란 힘들 것입니다. 설령 듣고 난 후 음질에 한 번, 그리고 현재의 정격 연주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느릿느릿하고 장중한 템포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실망을 느끼게 될지라도, 하다못해 "이것이 이전 세대를 풍미했던 한 명인의 자취이다"라는 감회 정도는 충분히 느끼고도 남으실 테니까요. 이글루스 가든 - 클래식 음악 듣기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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