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적'이란 뭘까? :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1960(DG)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 연주는 오래 전부터 극찬을 받아왔습니다. 4번에서 6번 "비창"에 이르는 차이코프스키의 후기 교향곡들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음반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통과 의례나 마찬가지이지요. 녹음된지 40년이 지나도록 TOP 프라이스의 가격을 유지해온 것만으로도, 이 음반이 얼마나 대단한 평가를 받아왔는지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세월에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그토록 끈질기게 TOP 프라이스를 유지해오던 이 음반도 결국은 오리지널스의 이름을 붙이고 2 FOR 1의 중저가로 재발매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무지막지한 가격 때문에 구입을 미룰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세월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반이 도착한 그 날 저녁, 막 개봉한 CD를 미니 콤포넌트에 걸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에 대해 바쳤던 찬사 그대로, "러시아적인 감성으로 가득찬 차이코프스키"를 듣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주는 제가 평소에 상상해오던 수준을 가볍게 상회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4번과 5번은 이번에 처음 듣게 된 것이고, 6번은 고등학교 때 카라얀의 1984년도 녹음(DG)의 라이센스 반을 구입해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아스라히 떠올리며 비교해 보았는데, 므라빈스키의 "비창"은 카라얀의 그것보다 음악에 담긴 감정의 농도에 있어서 확실히 더 선명하고 원색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견 거칠고 광폭하게만 들리는 음색이, 사실은 지극히 정밀하고 철저한 통제와 훈련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현악의 움직임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4번의 4악장과 6번의 3악장 등에서 그 점을 또렷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음반에 붙여진 가장 유명한 수식어인 "러시아적"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광포함과 서정적인 느낌이 공존하고 있음은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비록 그 진폭의 크기 면에서는 부족하다 해도, 비러시아계 지휘자인 카라얀의 "비창"에서도 충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므라빈스키를 태두로 하는 러시아계 지휘자들의 차이코프스키에 대해, "러시아적 감성"를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단순히 감정의 진폭 크기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음악적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이 장면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러시아적"이라는 표현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표현은, 일부 감상자들이 러시아 음악가의 작품을 러시아 지휘자가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연주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자신들이 받은 느낌을 그럴싸하게 표현하기 위해 우연히 선택하게 된 단어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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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어덜트 | 2008/11/24 19:13 | 클래식 음반 리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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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한우 at 2009/11/08 18:02
전체적으로 화끈한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게 러시아적일까요?? 저도 러시아적이라는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50년대 모노날 연주를 추천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안동림 선생님등등 (요즘에 나온 책에서도 이 음반을 언급하시더군요., 하지만 서술하는 부분에 큰 오류가 있다는;;;)
Commented by 영어덜트 at 2009/11/09 00:17
50년대 모노럴 연주라면 쿠르트 잔데를링과의 연주와 혼합된 오리지널스 음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 음반은 2005/06 년도판 펭귄 가이드 북에서도 므라빈스키의 스테레오 반을 대신하여 일순위로 추천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좋나? 싶습니다만 딱히 잔데를링이 안 끌려서 사서 들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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