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哀愁)의 1악장: 말러, 교향곡 9번 - 브루노 발터, 빈 필하모닉, 1938(EMI)
- 이 음반은 타임머신이다. 최신의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긴 하지만, 리마스터링 덕택에 그럭저럭 들어줄만한 음질 저 너머로 지금은 사라진 70년 전의 풍경이 나타난다. 현을 다루는 방식도, 악상을 이끌어나가는 호흡도, 리듬과 박자 감각도 지금과는 사뭇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시대의 변천 앞에 사라져버린 옛 것의 애수가 귓가를 촉촉히 적신다. 조용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늙고 순한 코끼리의 마지막 울음소리처럼.

- 위의 조금 낮간지러울만치 감성적인 평가는 어디까지나 1악장에만 해당된다. 2악장 이후부터는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60년대 이후의 연주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 2악장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3악장은 난잡한 감이 있고, 4악장에서는 카라얀의 80년대 연주가 가지고 있던 '회오'의 감정 같은 대단한 것은 찾아볼 수 없이 그저 휙하고 지나가버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음질도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최신의 리마스터링 기술도 원 녹음에 쌓인 세월의 무게를 덜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가.

- 그래도 나는 이 음반을 좋아한다. 1악장만 놓고 보면 이후에 등장한 어떤 연주와 비교해봐도 애수를 자극하는데 있어서는 결코 꿀리지 않는다. 음질의 미비함은 여기에서는 오히려 플러스 효과로 다가온다. 이런 애수어린 분위기는 조금쯤 뭉개지고 위태롭게 초점이 흔들리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남아있는 음질 조건에서 더욱 증폭되는 게 아닐까. 마치 낡고 먼지에 뒤덮인 옛 흑백 사진 앨범을 꺼내보는 기분에 비견할만 하다.

- 왠만큼 이 곡을 들어본 사람들에게 일종의 별미라는 인상으로 각인될만한 음반이다. 초심자들에게는 음질로나 연주의 전체적 수준으로나 그다지 권할 수 없다. 하지만 한번 이 낡고 빛바랜 녹음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히면, 말러 9번 교향곡 연주라면 우선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볼 수 있을 정도의 아우라(설령 위조된 가짜라고 하더라도)는 남아 있는 듯 하다. 어디까지나 1악장이 지니고 있는 유별난 애수의 풍미 덕택이 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글루스 가든 - 클래식 음악 듣기
by 영어덜트 | 2009/12/02 00:38 | 클래식 음반 리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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